정치인 김정은 등장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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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를 얘기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에서 김정은이라는 독재자의 이미지는 2018년을 기점으로 확실히 세탁되고 있다. 예전에는 경험없고, 충독적인 면을 강조할 때 주로 지적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나이가, 이제 남한 매체에 의해서 84년생 연예인들과 비교되며 친근하고 긍정적인 젊은 지도자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인물 묘사는 2018년 이전의 남한 매체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이다. 2018년 이전에 남한의 어떤 매체라도 이런 식으로 김정은을 묘사했다가는 친북세력이나 종북세력으로 몰려 상당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남한 매체들은 북한의 김정은을 한 명의 정상적인 정치인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은 뿐 아니라 김여정과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인 리설주까지도 매우 친근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다.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북한 정권이 남한의 정권과 국민들을 상대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렇게 태도가 변한 것일까. 태도 변화의 이유를 소프트 파워 전략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국가적 이익(national interests)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인가. 

북한 정권과 지도자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선호도는 분명 남한 정권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한과 협력하고 싶어도, 여론이 반대하면 이는 정책의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상당한 장애가 된다. 그러나 남한 국민들이 김정은과 그 정권을 호의적으로 느끼면 남한 정부가 그들과 협력하기 쉬워진다. 김정은 정권이 경제 부흥을 꿈꾼다면 1차적으로 손잡아야 할 대상은 누구보다도 남한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인적 자원은 북한의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북한에게 있어 남한과의 관계는 미국과의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체제의 성격이나 국제관계의 역학으로 따져보면 북한과 미국은 상극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이질적이다. 그러나 남한은 서로 다른 체제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이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 미국과 밀접하게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남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북한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거부해온 미국을 설득해 북미대화를 성사하는데 남한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이미 1년 가까이 임기가 지나 4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정해진 임기가 없다. 4년 뒤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문재인 정권의 사람들이 통일을 염두해 두고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장기적 안목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아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김정은 정권은 남한 국민들을 상대로 쌓아가는 자신들의 이미지가 5년, 10년 뒤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벌써 하루가 멀다하고 김정은 정권의 소식을 담은 뉴스와 콘텐츠가 생산되며, 남한 매체의 핫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여론이라는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런 식이라면 곧 홍준표 대표보다 정치인 김정은의 지지도가 더 높아지는 건 시간문제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0년 뒤 김정은 정권은 남한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고 상당한 인기를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해방 전후부터 70년 이상 선전선동기술을 갈고닦아 온 나라다.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정상회담 개최를 한참 앞둔 상황에서 앞으로 통일 과정에서 남한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 이미 전략적으로 철저히 계산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의 장기적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