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는 1941년 생으로 74세의 미국 최고령 대선 후보다. 힐러리는 47생으로 68세다. 샌더스보다 6살 더 어리다. 나이로 봐도 사전 인지도로 봐도 70대로 훌쩍 넘긴데다 비주류인 샌더스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매력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샌더스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젊음과 늙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불릴만큼 미국 정치의 주류와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웃사이더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왔다. 청년 시절부터 품은 마음을 지켜온 사람.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신선한 이미지가 있다. 물리적인 나이와는 별개로 이미지만큼은 젊은 정치인인 것이다.
반면 클린턴은 영부인으로, 주지사로, 국무장관으로 현실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다보면 수많은 타협과 현실적 판단, 이를테면 기득권과의 유착관계 또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남아 있다.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천문학적인 물량공세가 필요한 미국 선거의 특성상 주지사, 대선 후보 경선 등 큼직한 선거를 숱하게 치러온 힐러리의 과거는 거대자본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이력 때문에라도 old-style의 정치인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는데, 과거 신흥 주자였던 오바마와의 경선과정에서도 낡은 이미지는 힐러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밀레이얼 세대에겐 샌더스는 새로움과 젊음으로, 클린턴은 낡음과 늙음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인의 젊음은 단순히 나이로 평가할 수 없다. 사상과 신념, 걸어온 길에 따라 절대적 시간과는 다르게 판단할 여지가 많다. 아무리 20대, 30대 정치인이 나온다고 해도, 그 생각과 신념이 구 세대의 유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면 그는 결코 젊은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속으로는 늙은 정치인이다.
젊은 정치인이란 새로운 생각과 신념을 품고 있어는 존재다. 기존의 체제와 구습과는 다른 확고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구체제의 악습을 타파할 새로움을 가져야 한다. 샌더스가 74세의 고령에도 젊게 느껴지는 건 그의 생각과 신념이 기존의 사고와 다른 확고한 차별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라는 미국의 선거판에서는 불리한 인종적 유산을 지닌 샌더스가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흑인 등 소수계층의 외면으로 힐러리에게 후보 경선과정에서 점차 열세에 몰리는 현실은 그래서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건 총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그 어떤 '젊은' 정치인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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